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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기도 싫은 계약서

작성자 사진: Gooya YoGooya Yo

최종 수정일: 2월 13일

하루에도 10여 건의 계약서를 검토하고 - 영문이나 한글 -, 담당자 미팅하고 내용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상대에게 feedback을 받고 연간 검토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거의 1000여건에 육박하는 숫자가 아닐까? 짐작한다.

법무 일을 하면서 계약서를 처음 검토할 때는 신줏단지 모시듯이, 닳아 없어지리만치 보고 덮어 놓고, 보고 덮어 놓고를 하였다. 이제 더 이상 검토할 사실관계나 조항이 없어도 혹시나 혹시나 무언가 불리한 내용이나 빠진 내용이 있을까 조심에 조심을 거듭 했었다.



익숙해지면서 몇백억원 가액의 회사분할이나 국제 채권양도계약도 검토 내용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담담하게 담당 부서에 이관한다.

'계약'이라는 거래의 매듭을 잘 모르면, 그 중요성은 알지만 내용의 구성과 이에 대한 제도적 이해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응당 겁을 먹을 수 있다.

계약 전문가로 불리어도 무방할 정도로 수 많은 종류의, 수 없이 많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검토하고 체결하였지만, 내가 살 집의 1장짜리 임대 계약서는 쳐다 보기도 싫다.

왜? 어렵고 딱딱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업으로 돈을 받고 하는 일에는 산을 옮길 수 있어도, 선택의 자유가 있을 때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이다.

계약은 이해관계가 있는 두 명 이상 - 삼자 간 계약도 당연히 있지만,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의 사람의 거래에 대한 합의이다. 더 간단하게 둘이 뭘 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백원 줄 테니, 네가 가진 구슬 5개를 나한테 줘?'

 '응.'

계약이다.

거래에 대한 합의이다.



말로만 이루어진 합의도 계약이다. 법적 효력은 서면으로 작성한 계약과 동일하다.

하지만 거래의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두계약 - 말로 이뤄진 거래 합의 - 을 부인하거나 내용을 달리 주장한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증인을 찾아야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여기에 대해 누가 맞느니 하고 서로 다투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하다. 그래서 웬만한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거래에 대해서는 펜을 들고 종이에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서면 계약서라면 빽빽하고 촘촘하게 작성되어야 하니, 그걸 내가 어떻게 해?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냅킨에 적어도 된다.

홍길동이 100원을 주고, 김갑돌이 홍길동에게 구슬 5개를 주기로 했다. 홍길동 서명, 김갑돌 서명으로 작성하면 된다.

단, 냅킨을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구슬 5개를 받을 때까지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규모가 큰 계약의 경우 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있고, 그 조항의 내용이 당최 무슨 의미인지 머리를 쥐어뜯는 내용도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계약이라고 하는 느낌의 서류이다. 그럴 때는 몇 명의 전문가가 붙어서 검토를 하고,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하고, 다시 수정하는 절차를 밟아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계약의 원형은

길동이가 100원에 갑돌이에게 구슬 5개를 산다에 다름 아니다.



엄마가 쓰레기 한 달 동안 버리면, 용돈 20만 원 준다고 해서, 열심히 버려줬더니 한 달 후에 없던 일이다 하면 열받지 않는가?

'Pacta Sunt Servanda -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라고 사적자치를 천명하였던 위대한 로마법 원형이 당신의 뇌신경에도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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